상하이 푸동 공항에서의 잊을 수 없었던 하룻 밤. 여행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자 보험을 두고 고민하게 되는데, 큰돈이 아니라도 현금이 나가는데다,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보험금을 받기 힘들어 보이니까.(hertravel님의 유럽여행 같은 경우가 없다고 보장 못하고.)

그렇긴해도 저번 여행이 별일 없었던만큼, 다음 여행에서 무슨일이 벌어질까 걱정이 되는건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별일없이 끝난여행'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언제나 크고 작게 트러블이 생겼다.

2005년 여름이었던가. 동생 여름휴가에 맞춰 상하이를 가기로 했다. 꽤 싼 여행상품이 나왔고, 내가 그해 구정에 상하이를 다녀온터라 말은 안통해도 그래도 관광안내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장어덮밥일줄 알고 꽁치덮밥을 먹었다거나, 물만두집에 가서 주문을 못해서 그냥 나왔다거나하는 소소한 트러블 끝에 마지막 날을 맞았다.
돌아가는 날 점심으로 훠궈도 먹어주시고.
선물이라거나 먹거리를 잔뜩 살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까르푸에가서 쇼핑을 했다.
추석때라 월병을 쌓아놓고 팔았다. 사실 어디나 월병을 팔았다. 사람들이 줄서서 월병을 사먹길래 사먹어 봤더니, 말린 고기가 들었있었다.
월병도 꽤 샀지만, 중점적으로 산 것은 냉동식품이었다.
냉동찐빵이나 냉동만두를 꽤샀다 얼마 이상 사면 냉동식품용 은박가방-그 뭐냐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팔 때 쓰는 그 재질-을 주길래 안심하고 담았다. 여름이긴해도 3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으니까 쉽게 녹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생이 상하이까지 와서 소룡포를 먹지 못해서 소룡포를 몇 개 챙겨넣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용양로(龍陽路)역으로 자기부상열차를 타러갔다. 7시쯤이었던 것 같다. 비행기 시간은 한 시간이 좀 안남았던 모양이지만 느긋했다.
그것도 그럴것이 상하이 시내와 푸동 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자기부상열차는 최고시속 431km로 30km구간을 무려 8분에 주파한다. 전에 상해갔을 때, 내친구도 태워보내고, 나도 타고가고, 여기 올때도 타고온 든든한 친구. 독일에서 만든 물건으로 실용화된 최초 구간이라고 한다.

그런데...역에 갔더니, 자기부상열차역 문이 닫혀있었다.

저쪽에서 택시기사들이 우리를 불렀다. 그제서야 대충 상황파악이 되었다.

자기부상열차의 운행시간은 '8:30-17:30'였던 것이다. 복사해온 가이드북에도 그렇게 쓰여있었다.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 지금 생각만 해도 위가 꼬인다.

지금은 21시까지 운행하는 걸보면, 아마 당시에는 운행한지 얼마 안 되서(2003년에 완성)운행시간이 짧았던 것 같다.
우리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닐테고, 그런 불운한 여행객을 위해 푸동 공항 직행편 택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기사가 요구한 금액은 100위안 정도였던 것 같다.(만 삼천원정도?) 까르푸에서 워낙 알뜰하게 쇼핑을 한 탓에 현금이 100위안이 안됐지만 어쨌든 타고봤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하고 달리, 내일 출근해야하는 동생이 큰일이었다. 택시 기사에게 휴대폰을 빌려 항공권에 있는 전화번호로 어찌어찌 대한항공에 연결을 했지만. 확답을 얻어낼 수는 없었다.

정말 택시는 날듯이 달렸지만, 자기부상열차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내리면서 가지고 있던 위안화와 몇장 있던 달러지폐로 계산하고 캐리어를 밀면서 대한항공 카운터를 뛰었다. 가까스로 30분 전.

결론만 말하면 5분 늦었다.

보딩이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 카운터의 현지 직원들. 어떻게 하려고 해도 현장 카운터는 권한이 없다는 말 밖에 듣지 못했다. 저기 아직 비행기가 상해에 있는데도 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연락하고 내일 아침 10시에 출발하는 첫비행기-그것도 상해항공-의 표를 끊었다.

이제 내일 10시까지 시간이 비었다. 푸동공항은 시원했지만, 너무 시원했고 밖은 더웠다. 숙소로 돌아가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이제 현금은 정말 '한 푼'도 없는 상태.
저녁은 다행히 선물로 샀던 월병과 망고스틴등을 까먹으며 버틸 수 있었다.

국제공항이라면 누워서 잠을 붙일만한 곳이 있기마련인데, 푸동공항에는 원래 없는지 아니면 내가 찾지 못했는지, 인체 공학적으로 길게 누워있을 수 없는 딱딱한 의자에서 불편한 밤을 보냈다.
동생은 사진에서 보듯이 대충 눕긴 했는데, 나는 가져간 PDA로 비쥬월드2를 하면서 밤을 보냈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탄 상해항공의 비행기.
기내식도 참...먹을 것 없어보이지만, 다 먹었던 같다.
사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다들 짐작할만한 후일담이 있는데. 까르푸에서 한 보따리 샀던 냉동식품. 어떻게 됐을까?
물론 집에 들어오는 즉시 냉동고에 넣었지만, 한 번 녹았다 어는 참사는 피할 수 없었다. 찐빵 종류야 별문제 없었는데. 안에 육수가 들어있는 소룡포의 경우 정말로 '한 덩어리'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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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녹차벌레 2007/04/22 16:06 # 삭제

    저상황에서는 당장 최고책임자를 불러라.....(대한항공의경우 보통 한국사람)
    그쪽에서 OK하면 한번 클로즈된 체크인카운터도 열리게 되어있느니.....
    탑승자리스트도 손으로 써서 어찌어찌 타게 되어있지...

    전에 그렇게 한명 태워봤다.....
  • 동굴곰 2007/04/22 16:18 #

    뭐야 난 인천에서 나가사키행 탈 때 30분 전에 닫힌 문 열고 뛰어들어갔는데; 그게 승객이 달리면 당연히 열어주는 게 아니었단 말야?! (...야;)
    <- 중국이어서 그랬을 거라고 우겨보는 1熊
  • 까날 2007/04/22 17:01 #

    녹차벌레> 부르긴 했는데, 이사람이 권한이 없었어. 뭐 우리가 그만큼 절박하게 따지지않은 게 문제였을지도 모르고.

    동굴곰>....그게 다 부시가 나빠서 그렇다니까.
  • Charlie 2007/04/23 06:22 #

    지난번 여행때 출발 2분전에 사정사정해서 들어간적이 있어서 더욱 안타깝군요. 게다가 소룡포가..!
  • 까날 2007/04/23 10:14 #

    Charlie> 소룡포가! 완전히 한 덩어리로!
  • 까날 2007/04/29 22:30 #

    hertravel> 참담하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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