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 고추가 없다는데, 판돈 전부하고 내 손모가지를........

조선 초기에 어떻게 고추가 있을 수 있나..(비류님께 바치는 조공)

'고추 조선 초기에도 있었다.'(중앙일보)

떡밥이나 물고 있을 때가 아닌데. 덥석 물어봅니다.

조선시대의 식생활에 대한 자료 중에 임진왜란 후대에 쓰여진 음식디미방이 있습니다. 여성군자로까지 칭송받는 정부인 안동장씨가 1670년에 쓰신 한글로 된 요리책으로 당시의 식생활을 잘 알려주는 책인데요(돼지고기 요리법보다 개고기 요리법이 더 많이 나오는 책이기도 하죠.) 주식에서 후식까지 146개의 요리가 소개되어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습니다.
이 책은 고추가 등장하지 않는 걸로 유명합니다. 적어도 1670년대 재령 이씨집안에선 고추를 안 먹었다는 뜻이겠죠?

보통 고추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자료로 지붕유설(1614년)을 드는데, 여기서는 남만초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南蠻椒 有大毒始自倭國來故俗謂倭芥子 往往種之' 대충 남만초는 독이있고 왜국을 통해 들어와서 왜개자라고도 부른다는 내용입니다. 남만이나 왜라는 이름대로 외국에서 넘어왔다는 뜻이지만 왜에서 넘어왔다고 콕 찝어서 이야기합니다.
지붕유설 이후로 50년이 지나 음식디미방이 나올때 까지도 아직 조선 땅에선 고추가 흔히 먹는 작물이 아니었습니다.

1614년에 문헌에 처음 등장한 고추는 1670년에 쓰여진 음식디미방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1765년에 쓰여진 '본초강목습유'에서야 '고추가 널리 쓰이고 있다'고 나옵니다. 그 뒤로 고추가 한국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임진왜란 전에 고추가 있었으리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추를 왜개자라고 불러지만, 일본에선 당개자(唐芥子)라고도 불렀습니다. 일본어로 고추를 唐辛子(토우가라시)라고 하는데, 굳이 풀어쓰자면 당나라(외국)에서 온 겨자 정도의 뜻입니다. 이쪽도 외국에서 넘어왔다는 느낌이 팍팍들죠.

조선에서 일본으로 고추가 넘어갔다는 자료는 일본 쪽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됩니다만.

큐슈 일부 지방에서는 고추를 후추(코쇼)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예로 유자후추(유즈코쇼)를 들 수 있는데. 유자후추는 이름과 달리 유자껍질과 고추로 만드는 조미료입니다. 큐슈 일부 지방에서는 후추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고추를 '남만후추'(난반고쇼)나 '고려후추'(코우라이고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토우가라시의 '당'이 꼭 당나라를 뜻하지 않듯이 '당,고려,남만'모두 외국에서 넘어왔다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쓰는 수식어라. '코우라이고쇼'가 고려(조선)에서 넘어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본에는 포루투칼 선교사가 1542년에 오오토모 요시시게(전국시대 크리스찬 다이묘)에게 '난반고쇼(남만후추)'를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향신료보다는 관상용이나 독약(!)으로 쓰여졌다고 하는군요. 고추는 일본에서 임진왜란이나 조선 통신사를 통해 넘어갔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라멘집의 유즈코슈(보통은 녹색입니다만.)

하나 확실한게 있다면, 만일 지붕유설 전에도 고추라는게 있었다면 그건 남만초나 왜개자하고는 다른 것이었을 겁니다.

이건 사족인데
한국요리에 고추가 등장한건 얼마 안 된다고 전통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원래 모든 음식문화는 언제나 최첨단입니다. 대상을 바꿔서 토마토 없는 이탈리안 요리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토마토가 들어간 요리는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라고 할 수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토마토도 처음에는 아메리카에서 넘어온 관상용이었는데 말입니다.

by 까날 | 2009/02/19 18:31 | 먹거리from日本 | 트랙백(1) | 핑백(2)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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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Old Gamer's .. at 2009/02/20 11:04

제목 : 일본에서 전래된 고추.
고추는 본래 남아메리카에서 재배되던 식물입니다만... 콜롬부스에 의해서 유럽으로 전래 된 뒤...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에서 다시 임란을 통해 한국으로 전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일본 사람들은 최근까지 고추를 거의 먹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최근에 고추를 먹게 된 것도 김치를 비롯한 한국의 영향입니다.... 기무치 나베(김치전골?)는 아주 유명하고 자주 먹는 일본의 국민요리화 되고 있습니다. (거의 ......more

Linked at 루드라의 아수라장 : 고추 떡밥 at 2009/02/20 15:03

... 조선 초기에 어떻게 고추가 있을 수 있나..(비류님께 바치는 조공)http://kcanari.egloos.com/1873468고추 떡밥이 난무하고 있길래 잠깐 한마디만 하겠다.고추가 등장하기 이전 향신료의 제왕은 누가 뭐래도 후추였다. 베네치아가 후추 무역으로 돈을 벌어서 ... more

Linked at 耿君春秋 : 『조선개화사』에 .. at 2009/02/20 23:01

... )할 목적으로 번초를 수입하였는데 반도인의 체질이 일본과 달라서 그것을 먹어도 죽지 않고 도리어 매우 좋아함에 이르렀다고 한다.- 恒屋盛復, 『朝鮮開化史』, 東亞東文會, 1901.까날님 포스팅에 보면, 1542년 포르투갈 선교사가 일본의 오토모 요시시게에게 남만후추를 바쳤고, 그것이 향신료라기 보다는 관상용이나 '독약으로 쓰였다'는 말이 나오는데, 조선인을 죽일 ... more

Commented by 새등 at 2009/02/19 16:47
요리는 항상 최첨단이라, 재밌네요. 일본인이랑 얘기할때 항상 임진왜란에 건너온 고추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는데 흥미롭게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19 17:14
김치는 퓨전요리의 선구겠군요.
Commented by 까날 at 2009/02/19 17:48
김치에 고추가루를 쓰게 된 내력은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주영하 저)에 나와있는 설이 가장 와닿더군요.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19 18:02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보겠습니다.
Commented by 크라켄 at 2009/02/19 18:43
조선 초기에 고춧가루가 없었다는건 말하자면 상식일텐데
뭔 떡밥인가 했더니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 때문이었군요
그러니까 저 연구팀의 발표는 임진왜란 이전 문헌에 椒醬(초장)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이 초라는건 고추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고추는 임진왜란 이전에 있었다-
는 겁니다만...글쎄요-_-

이 초(椒)라는 한자만 봐도 굉장히 수상해지는데요
어째 향신료 계열이라면 뭐든지 다 붙일 수 있지 않습니까 이거;;

애초에 그때 "고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고추였을지도 모르는 마당인데..
고대 문헌에 나오는 간장은 지금 우리가 먹는 간장이 아니라
일종의 어장이었던것처럼....
Commented by 아케르나르 at 2009/02/19 19:33
음... 후추와 같은 동남아 향신료가 적힌 것을 고추라고 잘못 해석한 게 아닐까 싶군요
Commented at 2009/02/19 19: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까날 at 2009/02/19 19:56
唐揚げ하고는 한자 읽는게 또 다르죠 ^^
Commented at 2009/02/19 20: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izzleyou at 2009/02/19 20:12
순창고추장 전설에 따르면 무려 태조 이성계!께서 순창고추장을 맛보시고 그 맛에 감탄하셨다 하옵니다...

(...)
Commented by 까날 at 2009/02/19 20:15
쿨럭.........
Commented by 海凡申九 at 2009/02/19 20:25
블히타니카 백까사전에는 인도 중국, 남미가 고추의 원산이라고 한다는데... (먼산)


우사미를 불러야 하는 건가?
Commented by 海凡申九 at 2009/02/19 20:26
그리고 이미 아시아 고추가 존재했단 설을 토대로 하는 듯 합니다.
Commented by 알바트로스K at 2009/02/19 21:11
고추가 없었다는데 손모가지 말고 까날님의 고추를...(어?)
Commented by 루스 at 2009/02/19 21:19
조선 초기에 고추가 없었다면 어찌 후손이...... (음?)
Commented by 백합향기 at 2009/02/19 21:32
일본에서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래 고추는 독약인데, 조선에서는 그것을 맛있게 먹더라....]
이런 이야기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Commented by 멜리토스 at 2009/02/19 21:37
저도 그 기사 봤어요. 조선초기부터 고추가 있었다는 중앙일보 기사요.

그 기사에서 제기하는 '조선초기 고추설'의 유일한 근거는 '고쵸'라는 말이 조선 초기의 문헌에 등장한다는 것이더군요.
그게 사실이라 해도 '고쵸'가 조선 초기에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추를 뜻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증은 전혀 없었구요.
낚시인것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여 궁금했었는데 역시 떡밥이었군요.ㅋㅋㅋ
Commented by 회색인간 at 2009/02/19 21:43
이건 뭐 환빠에 가까운 해석실력이군요 그 연구팀.,......초라고해서 고추가루로 해석하다니....좀 짱인듯
Commented by 키리 at 2009/02/19 22:36
아.. 그 기사 보고, .. 의례 .. 다른 식물하고 착각하는거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역시로군요.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02/20 03:06
원래 모든 음식문화는 언제나 최첨단입니다. - 100% 동의합니다.
Commented by 로무 at 2009/02/20 11:11
보통 저 고쵸의 번역은 후추지...
Commented at 2009/02/20 23:3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9/02/23 13:48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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