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자 누룩의 생쌀 발효법에 대해.: 느린마을 막걸리를 위해. ├우리 술이야기

느린마을 양조장


답글로 달려다 길어져서 따로 트랙백을 하겠습니다.
 
생쌀발효법은 전통방법이 아닐까?
 
직접 술을 빚어본 사람이라면 생쌀로 술을 빚는다고 했을 때 믿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술이란 고두밥을 지어 누룩을 넣고 발효시켜 만드는 것이지 생쌀에 누룩을 넣는다고 술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 법입니다.
 
실제로 생쌀발효법을 복원한 우곡 배상면 선생님 본인도 믿지 않으셨습니다.
 
때는 1970년대 초, 오래된 문헌의 한 구절을 붙잡고 우곡 배상면 선생님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문헌의 이름은 '고사촬요(故事撮要)', 명종9년(1554년)에 간행된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전통주에 대한 내용도 많이 실려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주의 특징은 세계에 유래없는 다양함입니다. 단순히 마시고 즐기기 위해서만아니라 제사에 쓰기 때문에 집집마다 빚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름있는 종가집치고 이름있는 술 하나둘 없는 집이 없을 정도입니다. 조선중기의 요리책 '음식디미방'의 경우 실려있는 146종의 요리중에 술빚는 방법이 51종이 실려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집안마다 술이 다 다르기 마련이고 옛 문헌에 보면 별의별 술빚는 법이 실려있습니다.
 
'고사촬요'에 백하주 빚는 법이 적혀있는데. 그 내용이 '백미 한 되를 갈아 그릇에 담고, 뜨거운 물 세 병을 쳐서 식은 뒤에 누룩가루 한 되와 주모 한 되를 섞어 독에 넣었다.'이었는데 처음에는 우곡 배상면 선생님도 반신반의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해방이후 많은 술도가가 백하주의 복원에 도전했지만 성공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생쌀보다 밥을 소화시키기 쉬운 것처럼 누룩도 생쌀보다 밥을 소화 시키기 쉽습니다. 누룩균이 전분을 분해해서 당으로 만들면 효모가 그걸 먹고 알콜로 소화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술입니다. 그러니 생쌀로 술을 빚는다는 문헌을 쉽게 믿기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문헌에 따라 몇 번을 술을 빚어도 매번 빚어지지 않고 썩을 뿐이었습니다.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백하주의 복원에 매달리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때는 1970년대 초, '석유파동'이라는 현실에 쌀을 찌지않고 빚을 수 있다면 술빚는데 큰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에 반신반의하면서도 계속 연구를 이어가셨습니다.
그렇게 연구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백하주의 복원에 성공합니다. 다른 누룩균에 비해 베타 전분 분해력이 강한 Rhizopus oryzae KSD-815균을 발견해 고사촬요의 백하주가 실제로 존재하고 우리 조상들이 쌀을 찌지 않고도 술을 빚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었습니다.
 
생쌀의 전분은 규칙적(베타 전분)이기 때문이 소화하기 힘들지만, 열과 물을 가해 불규칙하게 만들면 밥(알파 전분)이 되어 소화하기 쉬습니다. 술을 만드는 누룩 역시 쌀보다는 알파 전분인 고두밥을 소화시키기 쉽죠. 그래서 생쌀은 술로 만들기 불가능하다고 알려져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생쌀로도 술을 빚는 방법을 발견해서 문헌으로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우리 전통주는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로 폭이 넓고 깊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문헌에 재래누룩을 만들 때 볶은 밀과 찐 밀과 함께, 날밀도 넣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리조푸스의 힘에 대해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복원한 백하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술이 바로 우리가 잘아는 '백세주'입니다. 그리고 배씨집안 술도가(국순당, 배상면주가, 배혜정 누룩도가)에서는 이 무증자 누룩을 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트랙백한 원문에 등장하는 '느린마을 막걸리'도 이 무증자 누룩을 사용합니다.
 
이런 곡절이 있는 만큼 생쌀 발효법(무증자 발효법)도 전통적인 방법이 맞습니다. 쌀을 찌지 않고 갈아서 발효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누룩의 힘에 맡긴다는 점에서는 여느 술빚는 것과 다를바가 없지요.


맥주도 빚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나오듯이, 전통주도 빚는 방법, 사용하는 누룩에 따라 다양한 술이 나올 뿐입니다. 무증자 누룩이 공업적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방법은 아닙니다. 특히 두 배 이상의 알콜도수를 빚어 물을타는 하이그래비티 공법에 비교한다면 왕명을 받아 '고사촬요'를 편찬한 중종때 학자 어숙권이 지하에서 얼마나 억울해 하겠습니까?
 
느린양조장 막걸리는 좋은 술인데 오해를 받고 있는 것 같아 글이 길어졌습니다.
 

사실 조효소제도 재래 누룩의 주균인 라이조프스와 우사미 및 오리제 등 균을 배양하여 만든 일종의 순도높은 개량누룩인 셈이지만. 이건 이대로 또 이야기가 길어질테니 다음기회로 넘기겠습니다.

핑백

  • 鐵木居士의 月印千江 : 생쌀발효법 논쟁 2010-11-06 21:27:45 #

    ... (원글) 느린마을 양조장(답글) 무증자 누룩의 생쌀 발효법에 대해.: 느린마을 막걸리를 위해.원글은 최근 양조장에서 하는 생쌀발효법은 맛이 없다는 얘기다.비용절감과 생산공정단축을 위해 맛을 희생시켰다는 것이 요지이고,답글은 전 ... more

덧글

  • The Lawliet 2010/11/06 11:47 #

    아........읽어보니까 이거 생각보다 엄청난 이야기였군요.....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누리숲 2010/11/06 15:01 #

    포장에 생쌀발효라고 써있는 걸 자주 봤음에도,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었네요. 보통은 고두밥에 누룩을 섞어 술을 빚는데 말이죠.
    이렇게나 새로운 사실인데!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밥과술 2010/11/07 13:24 #

    얼마전 양재동 일동제약 옆의 느린마을 양조장에 가서 막걸리를 시음하였습니다. 참 맛있더군요. 그날 담근 건 과일향이 났습니다. 이틀된 것, 사흘된 것 비교하며 마시고 알딸딸 하였습니다. 며칠 뒤 비교해 보라고, 도봉동 그리고 다른 곳 한군데해서 세군데의 것을 날짜별로 보내주셔서 잘 마셨습니다. 막걸리가 원래 그런거지만, 쉬 배가 불러서 좋은 요리와 먹기는 좀 한계가 있다는...식사대용으로 가벼운 안주와 함께 마시기에는 아주 좋았습니다.
  • 2010/11/18 23:3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Grelot 2011/06/02 18:29 #

    어, 딴 건으로 검색하다가 무증자공법 관련해서 글을 보다가 트랙백하신 원글로 넘어가서..음..허허..
    댓글을 좀 달아놓긴 했는데, 뭐랄까.. 음.. 그 분이 술에 대한 소신은 있으신데, 소양이 없으신 분이라(!)...;;;

    오. 근데, 어찌 균주이름까지 이리 자세히 아십니까!(KSD = 국순당 이겠지요? 허허)

    옛글 잘 보고 감다!
  • 까날 2011/06/02 20:08 #

    옛 글에 답글을 남겨주시다니 ^^, 그 분은 절 탐탁치 않게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직접 술을 빚는 분들은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해서리.......

    찾아보니 회사 이름 붙은 균주가 많아서 재밌더군요. Saccharomyces Carlsbergensis라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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