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도리탕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먹거리from日本

트위터에서 닭도리탕의 이름에 대한 뜨거운 설전이 펼쳐졌는데, 생각해 보니 예전에 '일본에서는 닭도리탕을 뭐라고 부를까?: 하코다테의 어느 한국 포장마차.' 포스팅을 했었죠. 여기서 많은 분들이 덧글로 어원을 짐작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남겨줘서 여러가지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 논쟁의 쟁점은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 토리(鳥,鶏)인가 아닌가입니다. 일단 닭도리탕이라는 음식이 일본에서 넘어왔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하코다테 어느 한국요리 포장마차의 탓토리탄(タットリタン), 일본에서 닭도리탕은 한국 음식입니다. 일본어 위키에도 한국 쪽의 '토리(鳥)설이 적혀있지만 일본에서 전래된 요리라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일본요리 중에 닭냄비요리 토리나베(鶏鍋)와 토리노미즈타키(鳥の水炊き)가 닭도리탕하고 그나마 닮았지만, 닭을 넣고 끓인 탕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렇게 닮지 않았습니다. 닭도리탕은 아무리 봐도 감자탕에 돼지 등뼈를 닭으로 바꾼 요리에 가깝습니다.
일본에서 일단 김치나 고추가루가 들어가면 '한국풍'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레시피는 김치와 닭을 넣어 끓인 '토리 찌개(鶏チゲ)'입니다.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에서 왔다고 믿기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일본에서 비슷한 요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일본요리였다면 이름에 일본어가 남아있는게 이상하지 않지만 닭도리탕은 일본에서 넘어왔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도리가 일본어 토리에서 왔다고 단언 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에 비슷한 요리가 있었다면 이런 논쟁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위 그래프는 네이버 뉴스아카이브에서 검색한 신문 지상에 등장한 닭도리탕의 빈도수입니다. 1982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80년대 이후에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찬별님의 '한국음식의 탄생'등에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우리가 전통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요즘 들어서 만들어진 음식이 많습니다. '외식문화'가 활발해지고 난 다음에야 이름이 붙여진 요리가 많은데 닭도리탕도 대표적인 예입니다. 가까운 예로 찜닭이 있지요.
검색된 기사의 절반 정도가 외식문화 소개와 남한산성 부근이나 계곡에서 닭도리탕 등을 파는 무허가 음식점을 단속했다는 내용이라는 것을 봐도 닭도리탕이 1980년대부터 외식용 음식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1970년대 까지는 닭볶음이라는 이름이 일반적이었지만 1980년대 부터 닭도리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순화어가 '닭볶음탕'이 된 것이죠.

1976년의 동아일보에 실린 닭볶음(좌하단) 레시피를 보면 1970년대의 닭볶음은 닭도리탕과는 다른 요리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애초에 닭도리탕의 만드는 방법 어디에도 볶는게 없는데 닭볶음탕이라는 이름은 이상합니다.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에서 왔기 때문에 일본어 잔재라고 주장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딱히 근거가 없습니다. 일단 한국의 일본어 잔재 중에 닭 대신 도리를 쓰는 다른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닭도리탕이라는 이름이 닭鶏탕이라면 먼저 토리탕이라는 이름이 쓰이다가 앞에 닭이 붙었다고 봐야하는데 토리탕으로 쓰인 경우를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토리탕이라는 이름이 일반적으로 쓰인 예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 잔재라는 것을 이해시키려면 한국어에 남은 일본어 중에 닭이라는 뜻으로 도리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는가, 혹은 토리탕이라는 요리가 있었는가? 아니면 닭도리탕이 일본에서 넘어온 요리인가에 대한 설명이 하나쯤 필요합니다. 그냥 일본어의 토리가 닭을 뜻하기 때문에 일본어라는 주장은 개그(Gag)의 어원은 개구쟁이라는 주장하고 비슷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이것이다 하는 설명이 없기 때문에 닭도리탕의 어원은 지금도 오리무중입니다.

그런데다 일본어 잔재를 없애겠다고 만든 이름이 '닭볶음탕'이라니, 이거야 말로 족보도 없는 말입니다. 짬뽕을 초마면이라고 순화한 것은 애교로 보일 정도입니다.
일단 닭도리탕 어디에도 볶은 조리법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일단 볶음탕이라는 요리가 없지요. 오히려 순화어에 맞추다보니 닭도리탕의 레시피가 '볶다가 조린 음식'이라고 바뀌기까지 하는데 닭도리탕은 일단 삶거나 찌는걸로 시작하지 않나요? 닭도리탕의 논쟁을 키우는 것은 이 닭볶음탕이라는 이상한 순화어에도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어에서 닭도리탕이라는 이름이 왔다는 것을 근거가 없다고 보지만, 닭도리탕의 도리가 도리다에서 왔다는 내용도 딱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외보도리라는 음식이 있다고 하지만 '도리'가 들어간 요리 이름이 없다는 반론에 맞추려고 발굴한게 아닌가하는 의심도 듭니다.

최근에 힘을 얻고있는 설은 '조리다'입니다. 닭볶음탕은 이상한 말이지만 닭조림탕이라면 닭도리탕을 딱 설명하는 이름입니다.
조선중기에 구개음화로 ㄷ가 ㅈ발음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습니다. 춘향뎐 같은 표기죠. 지금도 저 북쪽에서는 구개음화의 영향을 덜받은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됴티(좋지), 했디(했지)등등.
그렇기 때문에 도리다가 조리다의 사투리라는 설은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닭을 조려서 만들어서 닭도리탕. 닭볶음탕과는 달리 이름에서 모순은 없습니다.

저는 셋중에는 닭조림탕 설이 가장 그럴듯 하다고 생각합니다.

덧.
토리가 한국에서 일본에서 넘어간 말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토리=ㅌㄹ, 닭=ㄷㄺ. 실제로 까투리=갓(아내의 옛말)+투리, 메추리=뫼(산)+투리 하는 흔적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덧.
음식 이름은 너무 많이 바뀌는데다 사라지는 것도 금방이라, 어원에 대한 기록이 없으면 확실하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좀 다르지만, 하코다테에서 파는 야키토리(焼き鳥)는 돼지고기 구이인데도 이름이 야키토리인 경우처럼 황당한 경우도 있으니까요.

덧.
닭도리탕(닭+鶏)과 비슷한 경우로 모찌떡(もち+떡)을 드는데, 찹쌀떡의 경우 다이후쿠(大福)라는 일본 찹쌀떡의 예가 있기 때문에 닭도리탕하고 닮은 일본음식이 없는 닭도리탕하고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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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세그위버 2012/02/27 11:35 #

    안그래도 트위터에서 이외수님의 글도 있고해서 닭도리탕인지 닭볶음탕인지 시끌시끌하던데 좋은 글 잘읽고갑니다'ㅅ')!ㅎㅎ
  • 푸른별출장자 2012/02/27 12:20 #

    충청도와 경북 산간 지방에서 민물고기를 졸여 만드는 도리뱅뱅이라는 요리가 있어서
    어쩌면 닭도리탕이라는 이름이 그것에서 나왔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육개장이 개장국에서 개고기를 안먹는 사람들을 위해 쇠고기를 넣어 만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앞에 육 이라는 글자를 붙였다는 것처럼요.
  • highseek 2012/02/27 16:05 #

    도리뱅뱅이의 도리 는, 돌리다에서 온 단어입니다. 생선을 접시에 둥그렇게 빙 돌려놓지요. 닭도리탕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 보리차 2012/02/27 12:46 #

    잘 읽었습니다. 어휘라는 게 정확히 어느 때에 누군가가 뙇 하고 제정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 정통성 따져가며 우리 것이 아닌 건 몰아내고 청산하고 순화하자는 류의 이야기들을 들으면 답답합니다.
  • 999 2012/02/27 13:35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눌눌 2012/02/27 14:13 #

    잘 읽고 갑니다 ^ㅅ^
  • 아니스 2012/02/27 14:58 #

    우리 나라 산간 지방 어딘가에 토끼도리탕이라는 게 있다고 하던데요...이 도리가 도렸다의 도리라고 한다고 하는 설도 있다던데.
  • 무명 2012/02/27 15:26 #

    어원은 근거부족으로 정답이 없다 해도 국립국어원의 볶음탕드립은 정말 어이가 없어보이죠.
    대체 어디가 볶는겁니까...그리고 볶음탕은 또 뭐고
  • marlowe 2012/02/27 16:04 #

    잘 읽었습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 데, 어느정도 해소가 되었네요.
    좀 다른 얘기지만, 오뎅은 그냥 오뎅으로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묵 이외에, 우엉, 삶은 계란 등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가서요.
  • 에톤 2012/02/27 18:04 #

    국립국어원 주장으로는 '도리'가 일본어에서 온 말일 가능성이 있어서 순화해야 한다니 이해하기 힘들죠. 정말
    그리고 닭도리탕 만들때 볶는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닭볶음탕이라고 우기는지
  • 소혼 2012/02/27 18:32 #

    닭도리탕이 나쁘지는 않은데 닭볶음탕을 내세우자니 곤란해서...;
    닭조림탕도 좋겠네요. 닭도리탕도 괜찮고요.
  • 방울토마토 2012/02/27 19:01 #

    닭볶음탕은 그냥 개소리.. 트위터 팔로우 딸림벗이라고 했다가 역공 당한것과 비슷한 느낌.
    본문에서도 말하셨지만, 요리의 과정에 '볶음'의 과정이 전혀 없는데 저렇게 지었다는거 자체가 에러죠.
    설마 요리 한번도 안 해본건지;;
  • sandmeer 2012/02/27 21:58 #

    경상도 사투리에서 자르다를 도리하다, 라고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난 거기서 온 거라고 생각했었음. 닭을 도리해서(잘라서) 만든 요리... 물론 닭도리탕이 어느 동네서
    처음 시작됐는지 모르겠으니 이건 내 생각일 뿐...

    그래도 닭도리탕에서 중간의 도리만 일어에서 왔다는 건 이상해. 닭볶음탕은 사실 더 이상해. -_-;;;
  • 닥슈나이더 2012/02/28 06:14 #

    근데.. 모찌떡이라고 이야기 하나요??

    찹쌀떡 또는 모찌라고 이야기를 하기만 했던것 같은데....
  • 뒤죽박죽 2012/02/28 19:56 #

    만화 식객에서도 닭도리탕을 닭볶음탕으로 불러달라는 말이...;;;
  • 키르난 2012/02/29 20:23 #

    닭도리탕이 닭鳥탕이라거나, 닭도리치기탕이라는 건 들어보았는데 닭조림탕은 미처 생각도 못했습니다.+ㅅ+ 이쪽이 제일 심증이 가네요. 최근 요리법에서도 조림은 간장, 설탕 등을 넣고 달게 하거나 고춧가루도 섞어 넣기도 하고.. 여튼 닭고기를 조리는 것이 실제 조리법과도 통하니까요.
  • 원더바 2012/10/22 15:00 #

    옷에서 웃도리 아랫도리 하는 식으로 ~도리 가 같은식으로 쓰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깨몽 2013/06/10 16:25 #

    멋집니다.
    '닭도리탕'이 일본말이 합쳐진 말이라는 주장은 널렸어도 바탕을 밝혀 말한 데는 보기 어려운데 이렇듯 여러 뿌리를 밝혀놓았으니...
    특히 '닭도리탕'이 1982년 즈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는 근거는 무척 좋습니다.
    제 글에도 옮겨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http://wp.me/p12vFi-eP7QlI
  • 깨몽 2013/06/10 19:52 #

    미안합니다. 제가 본디 글을 고치면서 고칠 때마다 트랙백이 들어갔나 봅니다. 지금 이 댓글과 트랙백 가운데 하나만 남기고 지워주시면 고맙겠습니다.(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 Cretom 2014/10/02 10:36 #

    생각없이 그저 보편적인 내용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응해서 그건 일본어에서 파생된 거야! 라고 말하기는 쉬운데
    거기에 거스르고 작성자분처럼 글 쓰기는 쉽진 않지요. 저도 그건 일제시대에서부터 내려온 단어야 쓰지마! 라고 정의내리는
    몇몇 단어에 대해 갸우뚱? 하기도 해서 내용이 참 와닫네요 재밌기두 하구요 ㅋㅋ
  • 음음 2017/01/20 01:08 # 삭제

    닭을 도리쳐서(도리치다=잘게 자르다; 저희 고향에서 쓰는 말입니다) 닭도리탕인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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