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자 데즈카 오사무. ├책책책 영화영화영화

의학자?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

일본에서 만화의 신이라 추앙받는 데즈카 오사무의 이력 중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의학박사 학위'입니다. 대표작 중 하나인 ‘블랙잭' 덕분에 더 유명한데, 의사 면허는 1952년에 의학박사 학위는 1961년에 획득 했습니다.
1952년은 ‘정글 대제(밀림의 왕자 레오)’를 연재(1950년~1954년)하던 시절이었고, 1961년은 이미 인기 만화가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렇게 만화를 연재 하던 시절에 의사 면허와 의학 박사 학위를 따다니 사실이지만 믿기 힘든 일입니다.

데즈카 오사무는 1945년(18세)에 오사카 대학 부속 의학 전문부에 입학합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군의관을 키우기 위한 단기 집중 교육기관 이었지만, 졸업을 한 것은 1년 유급해서 전쟁이 끝난 1951년이었습니다. 프로필에 ‘오사카 의대 졸업'이라는 것은 과장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오사카 대학 부속 의학 전문부는 후일 오사카 의대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과장이라고 보기는 힘들죠.
어린 그가 군의관을 꿈 꾼 것은 일본 최초의 군의관이었던 증조 할아버지 데즈카 료안의 영향이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렸을 때 의사에게서 치료 받은 일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나니와고등학교(지금의 대학과정을 포함한 7년제 학교)입시에서 떨어진 다음에 오사카 대학 부속 의학 전문부에 입학 한 것을 생각하면 ‘전쟁에 안 끌려가고, 군의관이 되면 후방에 갈 수 있다'고 군의관을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가 다닌 기타노 중학교는 군사색이 짙은 학교였고 심지어 1944년에는 학교의 군사 훈련을 따라가기에 체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강제훈련소에 입소 당하기 까지 합니다. 근로봉사 중에 오사카 대공습을 당해 죽을 뻔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쟁터에 끌려가기 싫어서 의학부에 지원했다는 것을 충분히 있을법한 일입니다.

종전 전후의 혼란기였다고 하지만 만화가와 의대생을 양립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둘 중에 의대생 생활에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자전적 만화인 ‘가챠보이 일대기'에 따르면 강의실의 맨 뒷줄이 지정석이었고 만화 원고 작업을 하다 잉크 병이 교수 앞까지 굴러 떨어진 일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인턴 시절엔 간호사를 ‘딴스홀에 데려가 주겠다'고 꼬셔서 먹칠과 지우개질을 시켰는데 ‘빈 방에 데즈카 선생이 간호사를 끌고 들어간 뒤에 좀 있다 보면 간호사가 지쳐서 나온다'는 구설수에 올랐던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라는 책에도 나오듯이 ‘하고 싶은 일을 해라'는 어머니의 말에 만화가를 택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의대생 시절부터 이미 유명 만화가였지요. 재학 중엔 단행본(잡지의 별책부록) 위주로 작업을 했지만 1950년에 정글 대제(밀림의 왕자 레오)를 월간 연재하면서 오사카와 도쿄를 11시간 동안 왕복 하기도 시작했습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직선을 그을 수 있다는 그의 기술은 아마 이시기에 탄생 했을 것 같습니다.
무사히 인턴을 마치고 의사 면허도 땄지만 그는 의사 대신 만화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선택으로 여러 사람의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합니다.
설렁설렁 의대를 다니고 1년 유급하긴 했지만, 의사 면허를 고도리 해서 따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게 과연 사람인지 의심이 될 지경입니다. 이런 기적에 가까운 양다리를 걸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좀 천재였기 때문입니다.
데즈카 오사무 주위의 사람들의 일관된 평가는 ‘천재’입니다. 다작하는 만화가들이 스토리와 아이디어를 보통 편집자나 스토리 작가 등 외부사람에게 얻는 것과 반대로 데즈카 오사무는 그림은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받아도 스토리가 부족했던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콘티를 짜는 게 어려워요'라는 동료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이디어를 마인드 맵 형태로 확장시키는 방법을 애용했다고 합니다.
속독이 특기로 500페이지 정도의 책은 20분 정도에 읽을 수 있어서, 편집자와 만나기 전에 짬을 내서 책방에서 서서 읽기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가 바쁜 것을 제일 잘 아는 편집자가 ‘도대체 선생님은 그렇게 바쁜데 어디서 공부를 하십니까?’라고 궁금해 했다는 일화가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데즈카 오사무 넷에선 그의 만화를 ‘시리어스 드라마', ’세미 다큐멘터리(대부분 자전적 이야기)’, 호러&미스테리, SF, 모험&팬터지, 개그, 그외로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톰, 사파이어 왕자(리본의 기사), 밀림의 왕자 레오(정글 대제)등이 유명했지만 아돌프에게 고한다, MW, 아야코, 더 크레이터 등 성인을 대상으로 그린 작품도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데즈카 오사무 작품의 폭넓음을 이제서야 실감하게 됩니다.

1952년에 의사 면허는 땄지만 실제로 의료 행위를 하지 않은 데즈카 오사무가 다시 의료계에 등장하는 것은 1961년입니다.

http://ginmu.naramed-u.ac.jp/dspace/handle/10564/1075  <- 나라 의과 대학 데이터 베이스의 데즈카 오사무 논문. PDF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전이라......

異型精子細胞における膜構造の電子顕微鏡的研究 이형 정자 세포의 막 구조의 전자 현미경 연구로 1961년에 나라 의대에서 발표한 논문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의사 면허를 취득한 직후에 박사 논문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기 만화가 였던 시절에 의학 논문을 발표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논문을 쓰게 된 경위에는 당연히 여러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최근 까지의 설은 ‘당시 전자현미경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오사카 의대 당시의 친구가 그림을 잘 그리고 의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데즈카 오사무에게 연구의 도움을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최근에 그의 논문이 인터넷에 공개가 되면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막상 도판은 그림이 아니라 평범하게 사진을 찍어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나서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아직 주사식 전자현미경이 등장하기 전의 투과식 전자현미경이라 사진을 찍는 게 쉽지 않았을 테고, 그의 그림 실력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 교수인 아즈미 곤파치로(安澄権八郎)교수는 오사카 대학 시절의 은사로 데즈카 오사무가 1959년에 결혼 할 때 중매인(일본의 중매인은 우리나라의 주례 정도의 위치)을 맡았다고 합니다. 아마 아즈미 교수가 그에게 나라 의학 해부학 교실 전자현미경 연구실에 와서 연구하는 것을 권했을 것 같은데, 그 바쁜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가 어째서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을까요?

당시 그가 슬럼프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은 히노마루 문고로 대표되는 극화(이시카와 후미야스, 사이토 타카오 등)가 일본 만화계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었고 기존 만화체인 데즈카의 인기가 한 풀 꺾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초인기 만화에서 인기 만화 정도의 차이였지만 만화에 대해서는 절대 꺾이는 일이 없었던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태어나서 처음 겪는 큰 난관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아즈미 교수가 ‘기분전환'으로 연구 참가를 권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에 연구에 참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슬럼프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일감이 끊겼던 것은 아니라 무척 바뻤던 시절입니다. 당시 나라 의대 해부학교실 전자현미경 연구실에는 당시 일본에 3대 뿐인 전자현미경 중에 2대가 있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가 곤충을 좋아해서 자기 필명에 곤충을 뜻하는 한자(虫)를 붙였다는 것은 유명합니다. 지금도 모교의 자료실에는 그가 만든 곤충표본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중학교 시절에 친구와 함께 직접 그림을 그린 곤충도감과 곤충의 세계라는 잡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곤충의 세계는 친구와 함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잡지처럼 엮은 책으로 11권까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일본에서 세 대 뿐인 전자현미경으로 바라보는 마이크로의 세계, 아톰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가 좋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데즈카 오사무가 전자현미경으로 바라 본 이형정자세포는 우렁이의 정자였습니다. ‘의학 논문에 왠 우렁이?’라는 의문도 들지만, 왠지 그가 정말 열심히 연구 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그의 경험은 훗날 부활의 신호탄이 되는 ‘블랙잭'의 바탕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실은 의대생 당시 데즈카 오사무는 세 다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세 번째 일은 연극이었습니다.
오사카 대학 부속 의학전문부와 오사카 여자전문학교의 합동 학생극단인 학우좌에 참가, 주연은 아니지만 여러 연극에 조역으로 참가했다고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의학전문부 간담회 장기자랑’이긴 하지만 피아노 연주로 개인부분 1위에 뽑힌 일도 있다고 하니 피아노 연주 실력도 보통은 넘었던 모양입니다.

괴도 이야기이긴 하지만 연극을 무대로 하고 있는 ‘7색 잉꼬'와 유작인 베토벤 이야기 ‘루드비히,B’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다재다능한 사람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빗대곤 하지만, 반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데즈카 오사무에 빗대어야 할 정도의 재주가 많은 사람입니다.

만화의 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아닌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덧글

  • skalsy85 2012/04/03 03:35 #

    인간이 아닌 것은 확실한 것 같다는 마지막 멘트에 백만표를 던집니다.........저는 공부 하나만도 허덕이는데..........ㅠ.ㅠ
  • 피그말리온 2012/04/03 06:50 #

    천재의 이야기는 범인을 항상 좌절하게 만드네요...
  • hansang 2012/04/03 09:58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만화의 신은 아니시더라도 천재는 확실합니다. 정말로요...
  • 信元 2012/04/03 10:02 #

    흥미로운 내용이군요. 다만 500페이지 20분 읽기 + 흔들리는 차안에서 직선 긋기만으로도 경악스럽네요....
  • 엽기당주 2012/04/03 10:11 #

    난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더 신기한데..

    보면 저런 이야기는 그냥 웃음으로 흘려들을수 있을정도임. -_-; 아아..무서워..뉴타입은 실존했다..
  • KITUS 2012/04/03 10:32 #

    미국과 일본이 서브컬처 무적국가로 불린 이유는.. 단순히 천조국과 제2경제대국이라는 이유 뿐만 아니라
    신으로 불리는 월트 디즈니와 데즈카 오사무 모두... 영엄한 힘을 지닌 분들이었기에 가능할 것입니다..ㅠㅠ
    둘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악덕업자라 비난받는 면도 있었다지만 한분은 1930년대에 풀컬러 극장 애니메이션을,
    또 다른 한분은 공부도 잘해서 의학을 잘 알고 만화도 잘 그리며(평생 50종류가 넘는 만화를 그리고..) 리미티드 기법으로
    TV 애니를 만들기 까지 하니..ㅠㅠ

    우리가 보면 너무 저 두 분이 참 부러운 느낌이 들게 만듭니다..ㅠㅠ
  • KITUS 2012/04/03 10:37 #

    솔직히 데즈카 오사무께서 부활하셔서 우리나라에서 환생하신다면...
    아무리 우리나라가 만화가들에겐 학습만화나 웹툰으로도 잘 벌기 힘든 지옥같은 국가더라도
    그분이시라면.. 오히려 자신 만의 끼를 발휘해서 괴물같은 속도로 우리나라 문화계를 팍팍
    발전시킬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ㄷㄷㄷ 일본만큼이나요;;;
  • 사노 2012/04/03 10:45 #

    어시스턴트들한테 만화 원고 틈틈이 논문 그림 원고의 베타(검은색칠하기)를 시킨 에피소드도 관련 만화에 나오더군요. 저도 의학박사학위취득은 슬럼프 시절 한가할 때 딴 줄 알았는데 주간 연재 3-4개가 겹칠 때 썼다는 걸 알고 더 좌절. 그리고 자기가 그린 원고 대부분을 암기하고 있다는 에피소드에도 좌절.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악덕 소리도 듣지만 본인도 같이 힘들어했으니 뭐라고 대차게 쏴주기도......;;;(몇몇 실험 애니는 프로덕션 돈이 아니라 사비로 제작하기도 하고;;)
    파면 팔수록 재밌는 분입니다. 일본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 봄날의얼음 2012/04/03 11:03 #

    낮에 연구하고 밤에 V3 만든 안철수랑 비슷하네요. -_-;;
  • 삼별초 2012/04/03 11:05 #

    코바시가 좀 본받았으면(…)
  • 뜨신쌀밥 2012/04/03 12:22 #

    그냥 흔치않은 괴물천재...
  • 플로렌스 2012/04/03 14:37 #

    무시무시한 사람입니다. 무시(虫)...
  • 잠본이 2012/04/03 22:48 #

    우허허허 굿잡
  • 테인 2012/04/03 16:28 #

    보살님입니다 걍 그렇게 생각할래요
  • 존다리안 2012/04/03 21:03 #

    불새도 읽어보니 무서울 정도더군요
    일본쪽 서브컬처가 은근히 반체제적인 면이 있는데
    이분 영향도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 잠본이 2012/04/03 22:50 #

    훗날 '양지녘의 나무'에 료안을 주요인물로 등장시킨 걸 보면 증조부에 대한 동경도 어느정도는 있었을지도...
    그거야 어떻든 진짜 괴물 중의 괴물입니다. 남들은 한가지도 못해서 죽겠는데 못하는게 없어 OTL
    (아들 마코토를 비롯한 가족들이 회상할 때도 꼭 피아노 치는 장면은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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