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탕의 대구는 입큰 생선 대구가 아니라 사과의 명산지 대구입니다. ├옛날광고로 보는 음식이야기.

나이 지긋하신 분 블로그를 둘러보다가 업무로 일본에 갔을 때 어느 야키니쿠 식당에서 대구탕을 시켰는데 시원한 대구탕 대신 육개장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일본 사람들이 대구 대신 소고기가 들어간 탕을 대구탕이라고 생각하게 될테니 큰일이다'라고 개탄하는 글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구글 이미지 검색 '대구탕'

아마 그 야키니쿠 집에서 대구탕을 시킨 한국 사람은 백이면 백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테지만 그 야키니쿠 집이 음식 이름을 착각한 것은 아닙니다. 입 큰 생선 대구(大口)가 아니라 여름이 더운 동네 대구(大邱)탕은 소고기로 만드는 것이 맞기 때문이죠.

대구탕은 육개장의 옛 이름으로 옛날에는 육개장 보다 더 많이 쓰이던 이름입니다.

대구탕(大邱湯),대구반탕(大邱湯飯)은 소고기를 넣고 매콤하고 개운하게 끓인 국으로 육개장하고 똑같은 음식인데 대구에서 많이 먹는다고 대구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1930년 동아일보 '시내각 음식점 요리도 감하' 경성 시내 음식점 조합이 음식값을 내렸다는 기사를 보면 육개장은 없고 대구반탕은 등장합니다.
냉면, 장국밥, 어복장국, 떡국, 대구탕반, 만두, 상밥(지금으로 치면 백반정식), 비빔밥의 가격을 20전에서 15전으로 내리고, 13전으로 내린 설렁탕은 종로서의 지적을 받아 10전으로 다시 내렸다는 내용입니다.
1930년 경성의 대표적인 외식 메뉴가 '냉면, 장국밥, 어복장국, 떡국, 대구탕반, 만두, 상밥, 비빔밥, 설렁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개장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육개장보다 대구탕이라는 이름이 더 흔히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구탕반이 육개장이라는 것은 '별건곤' 1929년 12월호의 '대구의 자랑 대구의 대구탕반, 진품 명품 천하명식팔도명식물예찬'이라는 글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으니 당시에 대구탕이라고 하면 생선 대구가 아닌 소고기 탕국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요리 이름에 지명이 붙는 경우는 드뭅니다. 전주 비빔밥이나 평양 냉면은 지명을 떼어도 비빔밥이나 냉면이 되지만, 대구탕은 지명을 떼면 그냥 탕이 되어 버립니다. 그만큼 대구에서만 먹었던 뜻이고, 또 대구를 벗어나면 잘 안 먹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구탕'의 비밀은 의외로 간단한데 대구에서 그 만큼 소를 많이 잡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소가 귀중한 농경국가였고 '우금령'을 내려 사사로이 소를 잡지 못하게 되어있었습니다. 한양에서도 소를 잡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밀도살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대구탕의 고향 대구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바로 '소가죽' 때문이었죠.

19세기의 조선의 대표적인 수출품이 소가죽이었는데. 일 년에 일본에 수출하는 소가죽의 양만 2만장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소가죽은 당연히 경상감영이 있었던 대구에서 도축하고 무두질했습니다. 2만 마리면 하루에 50마리 꼴이니 당시 소의 무게를 생각하면 대구에 하루 10톤 가량의 소고기가 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냉장고도 없는 시절이니 이렇게 잡은 소고기는 대부분 대구 부근에서 소비가 되었을 것입니다.
대구에서 잡은 소고기는 한양까지 올라가지 못했지만 대구의 소장수들이 소를 몰고가 지금의 성남 판교의 우시장에 팔았다고 하는데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판교에 우시장이 선 것은 눈을 피해 밀도살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소고기가 흔하니 대구에서 소고기 국밥이 '대구탕'이라는 이름으로 대중화 될 법도 합니다.

이런 대구의 명물은 대구탕은 경부선이 깔리면서 경성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이제 경성에서도 소고기 국밥하면 대구탕이 된 것입니다. 

애초에 육개장이라는 이름은 개고기 탕인 개장국의 재료를 소고기로 바꿔서 만든 대용품을 뜻하는 말입니다. 음식디미방 같은 조선 시대 옛날 요리책을 보면 소고기 요리보다 개고기 요리가 더 많이 등장하는 데, 소처럼 농사에 쓰이는 것도 아닌 개는 우금령도 신경쓰지 않고 잡을 수 있는 부담없는 가축이었던 것입니다. 정조때 쓰여진 동국세시기에 삼복에 개장국을 먹는 풍습이 자세하게 나와있을 정도로 복날을 대표하는 음식이었습니다.

복날에 개고기를 구하기 어렵거나 개고기가 몸에 받지 않는 사람들이 소고기로 끓여 개장국의 대용으로 먹는 음식이 육개장이었던 것입니다. 개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데도 이름에 개장이 남아있는 것부터 없어보이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구탕과 개장국은 이름조차 남지 않았고 육개장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컵라면의 이름으로 붙을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습니다. 1950년 언저리에 대구탕, 개장국, 육개장의 이름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각각 벌어집니다.

1950년대 중반 '개장국 금지령'이 등장하면서 개장국이라는 이름 대신 복날에 먹는 개장국을 뜻하던 보신탕을 쓰게됩니다. 대신 소고기 소비는 부쩍 늘어납니다. 조선왕조와 함께 우금령도 같이 사라졌으니 전에도 우금령 따위는 무시하며 소고기를 먹었는데 어련하겠습니까.
게다가 대구에서 조차 따로 국밥의 등장으로 대구탕이라는 이름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대구로 피난 온 어르신들이 국에다 밥을 말아주는 족보 없는 대구탕에 기겁을 하고 '밥따로 탕따로' 달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따로 국밥'의 등장입니다. 그리고 이 따로국밥은 전쟁이 끝나고 다시 전국으로 퍼지면서 대구탕이라는 이름을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경향신문 칼럼인데 대구탕과 따로 국밥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980년에 이미 대구탕은 '매운탕'의 일종으로 자리를 잡았네요. 그런데 대구탕을 먹고 "허, 이게 옛날 그 대구탕일까?"하고 얼간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쓰여있습니다. 옛날 대구탕은 육개장이고 지금은 따로국밥이 인기라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생선 대구로 끓인 매운탕인 대구탕이 등장하면서 육개장인 대구탕은 완전히 사라졌네요.

위 칼럼에서도 생선 대구탕을 육개장 대구탕으로 착각하는 사람을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라고 평하고 있는데, 정말 서로 닮은 세가지 음식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지경입니다.
일본의 레시피 사이트에서 대구탕(テグタン)으로 검색하니 위에 두 개는 소고기 아래 두 개는 생선 대구로 만든 것이 나옵니다. 레시피 숫자는 육개장(ユッケジャン)이 제일 많습니다.

덧글

  • 뇌근 2015/08/05 16:39 # 삭제

    엄청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근래에 한창 세불리기에 돌입한 육개장 프랜차이즈의 탄생지가 대구라는 점이 떠오르구요. 잘 읽었습니다.
  • 차범근 2015/08/05 17:21 # 삭제

    ㅋㅋㅋ 작년 일본 고깃집에 가서 저를 당혹하게 했던 대구탕의 진실이 이거였군요.
    당시엔 '하... 일본놈들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한국 음식 팔고 있네'라고 생각했는데.
  • 애쉬 2015/08/05 18:56 #

    하필이면 대구가 대구고 그 대구도 탕을 끓이는 대구라 대구인지 대구가 대군지 헷갈리는 카오스군요 ㅎㅎㅎ

    대구가 어쩌다 육식의 본향이 되었는지 실마리가 될 이야기 고맙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추의 세례를 받은 음식에 붉은 육개장도 있네요... 고추 도래 이전의 개장국은 대체 어떤 모양이였을까요? 구례 목화식당 내장탕 같은 꼴이였을까요? 아니면 대구 상주 식당 추어탕 같이 채소와 된장을 풀어 만든 그런걸까요? 상상의 나래를 푸드덕여봅니다
  • 찬별 2015/08/05 21:51 #

    음식디미방의 개고기 요리를 보면 호초, 천초, 생강 등을 듬뿍 넣더군요. 뭐 고추다대기를 올리기 전의, 갖은 양념으로 얼얼하게 만들어놓은 순대국밥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양여진 2015/08/05 21:22 # 삭제

    오늘도 재밌는 이야기, 감사해요. 제 블로그에 이웃으로 연결했는데... 괜찮으실지.
    많이 먹지는 못해도 먹는 얘기, 늘 즐거워요~
  • 찬별 2015/08/05 21:52 #

    재밌게 잘 봤습니다. 대구에서 소를 그렇게 많이 잡았군요. 좀 더 파보고 싶은 주제네요.
  • 키르난 2015/08/06 12:28 #

    지금은 대구가 다른 걸로 유명하지만 그 당시는 소도 유명했군요. 하기야 지금은 대구보다 그 주변 지역이 소로 유명하다지만...'ㅠ'
    이런 맥락에서 한자 병기를 찬성합니다.(...)
  • 소년 아 2015/08/07 07:58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까날 님, 사과의 명산지보다는 여름 폭염의 대구(...)는 어떠신지요ㅎㅎ
    학생 때 제가 일했던 회사의 상무님께서 대구 출신이시라길래, "아, 사과가 유명한 대구요!" 라고 했더니 "이제 대구에서 사과 안 한다. 대구도 도시야!" 라고 발끈하셨던 기억이 떠올라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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