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22. 삼겹살의 유행을 만든 것은 XX였다. ├YYMMDD

얼마전에 ''대한민국 돼지 산업사'를 읽었다. 부제가 '삽겹살,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되기까지'라고 붙여진 책인데 첫 머리부터 황교익씨의 '수출하고 남은 삼겹살' 이야기를 반론하기 위해 책을 엮었다고 대놓고 쓰여있는 책이었다. 황교익씨의 '대한민국의 양돈산업이 일본자본에 의해 시작된 것이고, 삼겹살은 일본인은 먹지 않는 저급한 부위를 먹기 시작했고 그 맛에 중독되어 지금처럼 전세계에서 가장 삼겹살을 많이 먹는 이상한 나라가 됐다'는 주장이 방송을 통해 전파되는데 그동안 양돈에 대한 역사를 정리한 적이 없어서 적절한 반론의 기회를 잡지 못해 낸 책이다.

여러 명의 저자의 글을 모아 급하게 만들어진 책이라 같은 주제가 되풀이 되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동안 잘 알려지지 돼지고기와 양돈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었던 책이었다. 특히 삼겹살이 한국에 대중화가 된 이유가 그 전까지 나도 생각하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먼저 '일본에 수출하고 남은 삼겹살'이 저렴하게 풀리면서 삼겹살이 대중화 되었다는 황교익씨의 주장은 거짓이다. 우리가 일본에 많은 양의 돼지고기를 수출했고 일본에서 안심과 등심을 선호하고 삼겹살이 저렴한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가 일본에 수출한 돼지고기는 '지육'이었기 때문에 수출하고 남은 삼겹살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육은 머리와 내장, 다리를 제거한 통 돼지고기로 이 지육을 부위별로 나누는 '정육'을 거쳐 소비자에게 판매되게 된다. 우리가 알고있는 '정육점'은 이 지육을 정육해서 판매하는 곳을 뜻하는 말인데, 지육 상태로 수출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저렴하기 때문 일 것이다.

'수출하고 남은 삼겹살'은 없었던 만큼 삼겹살 유행에 대한 황교익씨의 주장은 거짓이라 양돈 업계가 책까지 내면서 적극적으로 반론하는 것이다. 그럼 한국인의 소울 푸드 삼겹살 구이의 유행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돼지고기 일본 수출이 삼결살 유행이 바탕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돼지, 닭고기 잠재 수요 높다'는 1983년의 매경 기사인데 축협 조사에 따르면 40%가 맛과 냄새 때문에 돼지고기를 덜 사먹는다는 내용이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돼지고기의 냄새가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돼지가 먹는 먹이의 향미 성분이 지방에 축적되는데 이것이 고약한 냄새를 내는 것이다. 지방이 두꺼울수록 냄새가 더 고약했고 지방이 많은 삼겹살 부위는 자연스럽게 외면 되었다.
돼지냄새를 빼는데 제일 좋은 조리법은 물에 오래 삶는 수육인데, 생강과 후추 심지어 인스턴트 커피까지 넣어가며 향신료로 냄새를 잡아왔다. 아니면 제육 볶음처럼 강한 양념으로 돼지 냄새를 숨겼다. 그렇기 때문에 삼겹살을 양념 없이 바로 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 수출을 위해 복합사료를 먹이기 시작하면서 돼지 냄새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돼지 냄새에는 먹이 말고도 또 한가지 원인이 있었는데 바로 수퇘지의 웅취였다. 수퇘지의 고환에서 만들어진 남성 호르몬과 호르몬 활동의 부산물이 축적되서 내는 냄새이다. 지금도 암퇘지 만을 사용하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정육점이나 돼지고기 전문점이 존재하는 것도 수퇘지의 웅취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웅취도 양돈기술이 발달하면서 거세를 통해 제거 할 수 있었다. 복합사료와 거세 시술을 통해 돼지고기의 제일 큰 단점인 냄새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삼겹살 구이의 원형으로 '암퇘지 로스 구이'를 꼽는데, 소고기 로스 구이처럼 돼지고기를 양념없이 구워 먹으려면 웅취가 없는 암퇘지가 필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돼지고기 구이집을 하기 위해서는 암퇘지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아야 했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정육 단계에서 암수 구별이 불가능하고 직접 구워보기 전에는 웅취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지육을 공급받아 직접 정육을 하지 않는 이상 '돼지고기 구이' 식당은 불가능 했다. '돼지고기 구이 식당'은 정육의 전문 기술 없이는 창업이 불가능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복합사료와 거세 시술의 등장으로 '냄새 없는 돼지고기'가 등장했다.

브랜드 돼지고기인 도드람 포크가 1992년에 런칭하면서 '냄새 안나는 돼지고기'를 장점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돼지고기 냄새가 사라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이 '냄새 안나는 돼지고기'의 등장은 삼겹살 유행으로 이어진다. 사실 고기를 불판에 구워 먹는 문화 자체는 '소고기 로스 구이'로 친숙 했지만 냄새나는 돼지 고기는 구워 먹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냄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무엇보다 '기술 없는 창업 아이템'이었다. 그 전까지 냄새 나지않는 돼지고기를 구하기 위한 정육 기술이 필요했지만 이제 아무 돼지고기를 구워도 냄새 걱정을 안해도 된 것이다. 게다가 로스 구이는 조리도 손님이 직접 하기 때문에 요리 기술도 필요없는 창업 아이템이었다. 그동안 냄새의 원인인 지방이 두꺼워 수육용으로 저렴하게 소비되던 삼겹살도 불판 위에서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

즉 삼겹살의 유행을 만든 것은 양돈 기술의 발전, 특히 그 중에서도 거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삽겹살 구이 문화의 시작에 일본 수출을 위한 양돈기술의 발달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걸 '일본에서 수출하고 남은 삼겹살 처리용'이라고 하면 헛발질도 이렇게 큰 헛발질이 없는 것이다. 양돈 업계 관계자 들이 부랴부랴 반론하는 내용이 담긴 책을 엮은 것도 이해가 간다.

이 글을 쓰다보니 지육과 정육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는데... 다음편 '내 조국, 삽겹살의 블랙홀(가칭)'으로 이어집니다.

덧글

  • 서산돼지 2019/04/22 11:11 #

    오랫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아직도 일본갈때 마다 올려주신 포스팅을 읽고 갑니다.
  • novrain 2019/04/22 12:31 #

    '은수저'에서도 등장하죠. 생후 1주일 후 OO...
  • 타누키 2019/04/22 16:26 #

    거세의 덕이었군요. ㅜㅜ
  • intherain 2019/04/22 17:49 #

    맛서인이 또...
  • 2019/04/22 22:40 #

    잘 읽었습니다!
  • 진주여 2019/05/16 00:48 #

    똥돼지가 사라진 이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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